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시행 첫날 국제유가는 하락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 간 협의체 OPEC+ 감산 조치 등 유가 변동성을 높이는 이슈가 연이어 발생했지만, 시장은 경기침체 우려에 더 강력히 반응했다. 미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1년 전 가격에 근접했다.

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내년 1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3.05 달러(3.81%) 하락한 배럴당 76.9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는 이날 오전 배럴 당 82달러를 넘어서는 등 상승세로 시작했지만, 미국의 경제 회복세를 나타내는 지표가 발표되면서 내림세로 돌아섰다.

이날 미 공급관리협회(ISM)가 발표한 11월 비제조업(서비스)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6.5로 시장 전망치(53.7)를 웃돌며 오히려 지난 10월 수치보다 상승했다. 미 상무부가 발표한 지난 10월 공장재 수주도 전월보다 1% 증가했다. 이는 미 연준이 금리 인상을 상당 기간 지속할 수 있다는 신호로 여겨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연준이 최종 금리 수준을 5% 이상으로 높이고, 내년 2월에도 2연속 빅스텝(한 번에 0.5%포인트 금리인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CNBC 방송은 “연준이 경제를 침체에 빠뜨릴 때까지 긴축을 계속할 수 있다는 우려로 시장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휘발유 가격 하락이 당분간 지속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1배럴 당 3.403 달러로 집계됐다. 한 달 전(3.797 달러)보다 10.4%, 지난해 6월 14일 고점(5.016 달러) 대비 32.1%로 하락한 수치다.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1년 전 가격(3.359 달러)보다 불과 0.044 달러 높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등한 상승분을 다섯 달 만에 되돌린 것이다.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2월 10일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47달러였다.

앤드류 그로스 AAA 대변인은 “휘발유 가격은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며 “가격은 곧 1년 전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AAA는 OPEC+ 감산과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이는 하락 속도를 늦추는 수준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휘발유 가격 정보 업체인 가스 버디도 오는 성탄절까지 휘발유 가격이 3달러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주요 7개국(G7)과 호주, 27개 유럽 국가가 참여한 러시아산 원유가격 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주요 항만이 정체되는 등 혼란도 빚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약 19척의 원유 유조선이 터키 해역을 건너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며 “터키 측이 가격 상한제 조치에 따라 해협을 지나가는 모든 선박에 대해 새로운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