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사태로 운항 차질이 장기화되면서 선사와 화주기업, 포워더(화물주선업) 등 수에즈 운하를 통한 해상운송에 기대는 기업들의 피해도 지속되고 있다. 이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비용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는 가운데 일부 기업들이 비용 부담을 떠넘기는 등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물류업계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동반성장과 상생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막상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돌변한 일부 기업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홍해 사태, 어떤 피해가 발생했나?
홍해 사태가 촉발된 직후 선사들은 늘 이용했던 항로를 더 이상 활용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희망봉 우회라는 차선책은 운임과 제반비용을 크게 높였으며, 이는 선사뿐만 아니라 화주기업, 포워더에게 모두 부담으로 작용했다. 피해 금액이 늘어나자 선사들은 부랴부랴 할증료(Surcharges)를 붙여 비용 보전에 나섰고, 우회 항로로 선박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선복량 부족 현상에 따라 운임이 치솟으면서 기대하지 않았던 실적 향상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선사 입장에서는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희망봉 우회 경로가 안정화되면서 운임은 점차 하락하고 있으며 후티 반군의 공격이 종료되면 다시 선대를 재배치해야 하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
화주기업들은 예상치 못한 물류비용 증가와 납기 차질로 피해를 입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유럽으로 수출되는 물량의 약 80%가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는데 희망봉을 우회하게 되면서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업계에 따르면 부산항에서 유럽으로 보내는 화물이 이전보다 12일에서 최대 15일이나 지연되고 있으며 이를 왕복으로 하면 최대 31일이 늘어나게 된다. 또한 선복량과 공컨테이너 부족 현상이 겹쳐 더 오랜 시간 지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항공운송을 택하기에는 채산성이 맞지 않아 중소 수출기업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포워더들도 이번 홍해 사태로 큰 피해를 입었다. 포워더들이 상승한 운임을 보전받을 길이 없어 고스란히 떠안을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포워더들은 운임과 할증료 인상 소식을 고객사에게 전달하고 조정을 부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다행히 많은 화주기업들은 고통분담 차원에서 일정부분 비용을 조정해주었으나 일부 화주기업들은 기존 계약한 금액 그대로 진행할 것을 종용했다. 뿐만 아니라 포워더들은 일부 선사들이 홍해 사태에 따른 선복 부족 등의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으면서 운송 차질을 겪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선사-화주기업, 할증료 보는 시각 달라
화주기업은 선사가 제시하는 할증료에 대해 적지 않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급증한 해상운임으로 홍해 사태 초기에 겪었던 손해를 상쇄한 뒤 높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선사들이 고통분담에는 동참하지 않는다는 것. 특히 일부 화주기업은 선사들의 할증료 산정이 살짝 부풀려진 것은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홍해 사태 종료 후 닥칠 공급과잉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최대한 자금을 끌어모으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한 화주기업 관계자는 “너무 많은 할증료가 붙는 건 아닌지, 액수가 적절힌지 의문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지금은 선사와 관계가 중요해서 별 내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액수가 과도하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반면 선사는 이 같은 일부의 시선에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희망봉 우회는 기존 수에즈 항로보다 인건비 등 더 많은 제반 비용이 지출되고 있으며 다른 선사보다 경쟁력 있는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일부 대형 포워더, 동업자 정신과 고통분담 외면 아쉬워
선사와 화주기업 사이에 끼어있는 포워더는 더 많은 애로사항을 겪고 있다. 급증한 운임과 선사가 제시한 할증료를 화주기업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익은커녕 손해만 볼 처지이기 때문이다.
한 포워더 관계자는 “예상보다 운임지수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포워더 입장이 난처한 적이 많았다. 영업직원들이 일일이 고객사 담당자를 만나 사정을 설명하고 계약 내용 조정을 부탁해야 했다. 다행히 많은 화주기업들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조정에 응해줬다. 물론 볼멘 소리도 많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만난 중소 포워더들은 대형 포워더들의 횡포에 적지 않은 불만을 표시했다. 종합물류기업의 포워더 사업부 또는 일부 대기업 계열 포워더들이 고객사와 물량 계약을 맺은 후 이를 중견·중소 포워더에게 재하청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부 대형 포워더들이 자신들은 손해를 감수할 수 없다며 계약 내용대로 이행할 것을 중소 포워더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
익명을 요구한 한 중소 포워더 관계자는 “화주기업들도 고통분담을 해준다. 그러나 몇몇 대형 포워더들은 화주기업보다 서로를 더 잘 아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조금도 손해를 볼 수 없다며 고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때문에 몇몇 포워더들은 계약상 이익의 5배, 6배가 넘는 손실을 보고 있다고 들었다. 이럴 때일수록 동업자 정신이 필요한 것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LX판토스 해운MI분석팀 황규영 팀장은 홍해 사태로 인해 표면화된 선사와 화주, 포워더 간 입장 차이와 적지 않은 갈등 해소가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규영 팀장은 “홍해 사태로 연말 연초 물류업체들이 비상이었다. 이미 10월부터 파나마운하 통항 차질로 일부 선박들이 희망봉을 우회하는 등 해운 서비스와 운영에 차질이 발생한 상황에서 수에즈 통항마저 여의치 않자 해운물류시장에 충격과 파급효과가 컸다”라며 “스케줄 지연에 따른 내추럴 블랭크(Natural Blank)가 대규모로 발생했고, 마침 중국 춘절 연휴 이전이라 물량 밀어내기가 시작됐던 1월 중순까지 선적 차질, 스팟 운임 급등, 선복과 계약 운임을 둘러싼 선사, 화주, 주선업체 간 입장 차가 컸다. 이 과정에서 훼손된 관계를 회복하기까지 이해관계자들의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경성 기자 bluestone@kl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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